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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교부에서 독립된 한국인들만의 노회를 말한다. 1907년 평양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 7인이 배출되면서 자체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하여 1912년 총회가 창설되기까지의 시대를 '독노회 시대'라고 한다.
"예수교장로회 대한로회"(독노회) 조직하다(장소: 평양 장대현교회). 독노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시작으로 총회가 세워지기까지 사실상 총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독노회는 선교사 33명, 찬성 회원 9명, 한국 교회 대표 36명이 참여하였으며 7인의 한국인 최초 장로교 목사가 안수되었고, '대한 장로회 신경(信經)'이 채택되었다. 이는 총회 창설의 바탕이 되었고, 한국인의 치리 참여, 한국 교회 자체 조직의 시작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총대 / 목사 43, 장로 36명, 계 79명 장로회 신경과 정치를 임시로 채택하고 최초 목사 7인을 안수하여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에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하다. 교세(노회 조직 시) / 목사 47명, 장로 53명, 예배처 984개처, 세례교인 17,890명, 원입교인 21,482명
1907년에 독노회가 조직된 이후 한국교회의 교세는 날로 부흥되어 독노회 산하에 7대리회(代理會)(경기 충청[경충, 京忠],평북,평남,황해,전라,경상,함경)를 조직하여 각지방을 관할하게 하였다. 7대리회의 명칭과 당시의 교회수는 다음과 같다.
경충대리회---50교회 평북대리회---160교회 평남대리회---89교회 황해대리회---47교회 전라대리회---127교회 경상대리회---186교회 함경대리회---78교회 합계 ---737교회
1907년에 창설된 독노회는 1908년에는 서울에서, 1910년에는 선천에서, 그후 1911년 9월 17일 대구남문안교회(현 대구제일교회)에서 제5차 노회를 개최하여 이듬해에 총회를 조직할 것과 '7개 대리회'를 '7 노회'로 승격시킬 것을 결의했다. 이 결의에 따라 1912년 9월 평양신학교 강당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결성되었다. 이는 1887년 9월 한국 장로회 최초의 조직 교회인 새문안교회의 설립 후 25년 만의 일이었다.
>> 목차고리 : 한국의 장로교회
>> 참고고리 : 독노회 창설과 한국최초의 7인목사 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