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사기21:8-25 뒤죽박죽이 된 사회
경솔히 행한 맹세로 인해 이스라엘은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며 안타까움에 몸부림을 칩니다. 마침내 베냐민 지파를 재건하기 위한 비장의 대책을 세우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런데 이는 큰 희생을 요구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한번 한 맹세에 대하여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Ⅰ. 또 하나의 비극을 부른 맹세 이스라엘은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즉각 응징에 나섭니다(8-11절). 사실 이렇게 행한 데는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베냐민의 남은 자 육백명을 위한 아내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 길르앗을 치되 남자와 잠자리를 아니한 처녀들은 죽이지 않고 생포하였습니다(12-15절). 이 와중에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은 무지막지하게 살해당합니다. 형제의 칼날에 같은 형제가 집단 학살을 당하는 꼴입니다. 이는 또 하나의 참극입니다. 이스라엘은 야베스 길르앗을 치면서 그다지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경솔한 맹세 때문에 이스라엘은 앞 뒤 가리지 못하고 행동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이 옳다라고 판단한 쪽으로 거칠게 밀어붙입니다. 그래도 누구하나 제지하지 않습니다. 다 치우쳐 행합니다. 우리가 같은 형제인 야베스 길르앗을 제물 삼아 베냐민의 재건을 도와와만 하는가? 다른 좋은 방법은 없는가? 그들은 이런 면에서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어찌하든 어서 빨리 사태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었는지 모릅니다.
Ⅱ. 비상수단을 강구한 이스라엘 전체 소집에 불응한 야베스 길르앗을 징벌하여 사로잡은 처녀는 사백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베냐민의 육백명에는 아직도 이백명이 모자랍니다. 또 다시 이스라엘은 고민에 빠집니다. 어디서 어떻게 모자라는 처녀 이백명을 구할꼬? 스스로 한 맹세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어렵게 길을 갑니다. 고심 끝에 이스라엘은 비상수단을 강구합니다. 그것은 베냐민의 남은 이백명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처녀들을 업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보쌈입니다. 결혼은 청춘 남녀가 서로 눈이 맞고 마음이 맞을 때 이루어져야 아름답습니다. 애지중지 기른 딸이 졸지에 납치되어 전혀 엉뚱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일을 당한 처녀의 집은 가슴 아프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무리한 계획은 성공을 거둡니다(16-23절). 그제야 이스라엘은 마음의 짐을 덜고 각자의 집과 고향으로 돌아갑니다(24절). 하지만 영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무엇인가가 뒤틀려 진 채로 무리하게 진행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억지로 우격다짐으로 꿰 맞춘 듯한 기분입니다.
Ⅲ. 왕이 없으므로(25절)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왕이 없으므로', 왕은 영적 지도자입니다. 이스라엘의 방향을 제시할 지도자가 없었기에 뭔가 뒤죽박죽이 된 사회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진정한 지도자요 왕은 사실 주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병리적 현상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바로 서지 못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입으로는 믿음을 외쳐도 실제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준이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기준을 자신들의 판단으로 바꾸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가르치는 것을 붙들고 살지 않고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붙잡고 달려갑니다. 우리는 여기서 깨닫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왕으로 주님으로 모시지 않은 사람은 탈선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분명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문제를 풀어가니 당연히 오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 가면 정답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방향감각을 잃고 헤맵니다. 하나님을 신상으로 만들어 섬기고 윤리적 타락의 늪에 빠지고 또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제대로 차지 못합니다. 영 뒤죽박죽이 된 사회입니다. 그래도 자신들은 옳게 산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더더욱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영적 지도자의 부재입니다.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시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리하여 이스라엘을 붙잡을 줄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능력 있는 사사들이 다스렸던 사사기 시대도 완전하지 못하였음을 보게됩니다. 후일 이스라엘은 사사의 한계를 느끼고 왕을 구하지만 역시 완전하지 못합니다. 진정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야 완전해집니다. 사사기는 사사를 통해서도 이스라엘은 완전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오 주님, 주님만이 우리에게 왕입니다.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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