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성경묵상이란?
1)Quiet Time
조용히 하나님의 진리로 내 안에 채우는 시간입니다. 교제의 가장 쉬운 방법은 대화입니다. 성경묵상은 하나님을 매일 만나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과 어떻게 대화를 하는가? 내가 말씀을 읽을 때 그분의 음성을 듣고, 나는 기도로 그분에 아뢰며 대화를 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과 대화할 줄을 모르는 것이 참으로 안타갑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히4:12)을 듣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는 사람과 일주일 한번 듣는 사람과 차이가 어떻겠습니까?.
2)경건의 시간(ꄦ εὐσέβεια, godliness)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
큐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Encounter with God). 매일 이른 새벽, 하나님을 만나 보면 그 만남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새벽 만남은 처음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곧 익숙해지고 기다려 질 것입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는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온몸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자전거 타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지요. 자전거를 타면 걷는 것 보다 훨씬 편하고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처음에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그 시간이 기다려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없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받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큐티는 조용한 시간과 조용한 장소에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노래하는 장난감이나 로봇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격체로 만드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9절에는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 24시간 내내 예수님과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펴서 읽어야 합니다. 그분의 얘기를 듣지 않고는 그분을 알 수도, 그분과 교제할 수도 없습니다. 매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면 점점 하나님을 닮아 갈 것입니다. 우리는 묵상을 통해서 묵상의 대상인 하나님을 닮아간다. 성경묵상이란 하루를 시작하면서 성경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실제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과 동행 하는 생활이다.
성경이 말하는 큐티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큐티를 했고, 큐티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순종했습니다."
모세가 죽자 이스라엘 백성은 30일 동안 애곡했습니다(신 34:8).
이렇게 모세를 따르고 존경하는 백성을 이끌어갈 생각을 했을때 여호수아는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요? 지금 여호수아의 마음은 자신이 다음 대권을 잡는다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그가 얼마나 떨었는지 여호수아 1장만 봐도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면 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최고 리더가 되었을때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 가득했습니까?
모세는 광야에서 자연과 싸웠지만 여호수아 자신은 가나안 땅에서 사는, 잘 훈련된 이방 사람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고대로부터 가나안은 비옥한 땅이었기에 힘있고 군사력이 강한 나라들이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훈련된 군인이라기보다는 오합지졸에 불과했습니다. 먼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오면서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생각을 하니 두려웠던 것입니다.
또 모세는 처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대단한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염이 허현 영감이 희끗희끗한 머리를 휘날리면서 지팡이를 하나 들고 나와 기적을 보여 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Follow Me!" 하고 외쳤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아가던 그들은 이런 능력 있는 모세를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는 아무런 기적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한 일이라고는 모세를 따라다닌 일 외에는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아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것입니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모세가 죽은 후에 약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갈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부탁하셨습니까?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모집하여 군사훈련이나 무기를 준비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것은 딱 한가지였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8).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비결은 강한 군사력이나 좋은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이 말씀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차지하기 어려운 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사람은 그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 땅이 언론계든지 정치계든지 경제계든지 어떤 곳이든지 말씀을 묵상하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묵상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묵상하다’ 라는 단어는 ‘시아흐’ 와 ‘하가’ 입니다. 이 단어들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하나님과 대화한다
첫째,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함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묵상을 합니다. 흔히 하나님과 대화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대화를 하기보다는 독백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백과 대화는 다릅니다. 독백은 혼자말하는 것이고 대화는 상대방과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과 대화를 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하나님의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적다는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도 적다는 것이다.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안에서 그분의 뜻을 성취하기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없는 사람은 마르다처럼 아무리 바쁘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도 성과가 없습니다(눅10:41).
2. 예배한다, 경배한다
둘째, 씨아흐(ꖑיꙶ 시119:15, 97) ‘씨아흐’에는 ‘예배한다’, ‘경배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산 제사’라고 합니다. 로마서 12장1~2절에서 바울은 형식만 갖춘 예배가 아니라 삶으로 예배하는 것이 산 제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과는 전혀 다르게 하루를 산다면 그것은 참 예배도 아니고 참된 묵상도 아닙니다. 만약 아침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 하는 말씀을 묵상했다면 비록 직장에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 속으로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근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을 읽었다면 정직하게 말해서 천만원 손해가 난다고 해도 정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묵상입니다. 주일에 거룩한 모습으로 예배만 드리는 것이 진짜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배의 지극히 작은 부분일뿐입니다. 일주일 내내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진짜 예배입니다.
일상생활속에서 예배하며 살았던 성경인물중에
1)노아 - 일상생활에 나타난 순종
어느 날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6장). 노아는 그날부터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마 동네 사람들이 노아를 비웃고 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방주 짓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은 보람이나 성취감도 느끼기에 할만하는데 알아 주지 않는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쉽지 않습니다. 노아는 950세에 죽었으므로 인생의 팔분의 일을 방주 만드는 일에 사용한 셈입니다. 우리가 70~80년 정도 산다고 볼 때 우리 인생의 팔분의 일은 10년 정도가 됩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를 위해 이름도 빛도 없이 어촌에 가서 네 인생의 팔분의 일인 10년을 사용하라” 고 하신다면 대부분은 펄쩍 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정말 노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말로만 믿은 것이 아니라 삶으로 예배한 것입니다. 산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명하신 것을 다 행했습니다(창 6:22).
2) 다윗 - 일생생활에 나타난 사랑
사울이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중에서 왕으로 정해 놓은 사람이 있으니 가서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기름 부음에 받을 때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도대체 목동인 다윗이 무엇을 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다윗이 목동일때 쓴 시들을 보십시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비록 나이가 어린 목동때나 국왕이 되었을때에도 다윗의 최고 관심사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맞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
이 말씀을 손목에 매고, 이마에 붙이고,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해서 암송하라고 하셨습니다(신 6:8~9).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 하는 모든 행위는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ㄴ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worker)이 아니라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예배자(worshiper)를 찾으십니다. 진정한 큐티는 그 말씀대로 사는, 삶의 예배를 드릴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3. 마음을 말씀으로 채운다
셋째, ‘시아흐’라는 단어는 마음에서 불필요한 생각을 제거하고 대신 말씀을 채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묵상은 자신이 발견한 진리나 교훈을 마음 깊은 곳에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10:9)
말씀 묵상은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영적 노동이다(신11:18,32:46,47;잠3:3,7:1-3).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6:6)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잠4:4)
성경을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고 계속 그 말씀을 마음에 되풀이하면 정말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말씀이 정말 살아서 마음 판에 새겨지려면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그날 큐티한 말씀 중에서 은혜받은 말씀을 기록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암송하는 것은 아주 좋은 큐티 방법입니다. 아예 큐티할 때 책상 위에 작은 암송 카드를 올려놓고 사용해도 좋습니다.
평소에 말씀을 암송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사인에 금방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성경 말씀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암송하면 신앙이 자란다고 말하면, 자기는 암송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 이제는 암송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뇌 세포는 사용하면 할수록 더 계발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뇌를 15%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하려고만 하면 암송 능력은 더욱 더 향상될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의 머리는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아무리 많은 내용도 암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내어 성경을 암송하면 복을 받습니다.
4. 마음을 깨끗이 한다
넷째로, 히브리어 하가(הꔾꕛ 시1:2, 수 1:8) ‘하가’ 라는 단어에는 ‘마음을 깨끗이 하다’ ,‘정결케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묵상이라는 것은 마음에 있는 더러운 생각이나 불필요한 생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결케되면 행실도 께끗해집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119:9)
사람의 마음은 더러운 생각이 가득하면 깨끗한 생각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묵상을 온전히 하려면 더럽거나 추한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면 스스로 결단이나 노력을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후4:5)
5. 되풀이한다
다섯째, 묵상이라는 단어는 무언가를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하가’ 라는 단어는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이나 비둘기의 구구 하는 소리와 어원이 같습니다. 시편의 후렴에서도 이 단어가 쓰입니다. 즉 묵상이란 계속 되풀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휴먼 미첼이란 박사는 인도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암소가 되새김질하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타이머를 가지고 소가 어떻게 되새김질하는가를 살펴보았는데 55초동안 씹어서 삼키고, 다시 음식물을 끄집어내서 너무도 정확하게 1초도 틀리지 않고 되새김질하더라는 것입니다.
성경묵상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여>라는 수1: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르치는 교훈을 입으로 되새기며 자신의 일상생활에 연관해서 그 말씀을 생활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고, 따르는 삶을 성경묵상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큐티는 아침에 묵상한 말씀을 하루 종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요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는 말씀으로 큐티했다면 이 말씀을 하루종일 되풀이해서 생각하여 내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말씀의 영향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큐티입니다. 그것이 좋은 묵상입니다.
앞에서 말한 예를 다시 한번 봅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는 말씀을 묵상했다면 이 말씀이 머리 속에서 하루 종일 되풀이 되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겨 걱정할 때 마음속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어려움을 이겨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묵상입니다.
다윗는 시편 19편14절에서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했습니다. 묵상은 단순한 성경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하여 내 일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읽은 말씀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결국 내 몸의 한 부분이 되게 소화해야 합니다. 이것은 묵상의 일부분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말씀이 내것이 되도록 되풀이하고, 말씀의 영향이 삶에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묵상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은 모두 묵상을 했습니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들판에서 묵상을 했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 전부터 묵상을 했고, 사무엘은 제사장이 되기 전부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닏. 하나님은 제사장인 엘리를 부르시지 않고 왜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습니까? 엘리 제사장에게 아무리 말씀하셔도 전혀 듣지 않았기에 사무엘에게 말씀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세상의 것을 가득 채우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도 묵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묵상을 했고, 심지어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묵상하셨습니다.
<질문>신명기 6장 5절과 시편 40편 8절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왜 마음판에 새겨야 하는가?
①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하나님을 마음, 성품, 힘을 다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②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 였나이다“(시40:8)*주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
큐티의 참 모델을 보여 주신 예수님
예수님도 시간을 정해 큐티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후에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으시고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온 동네에 다 퍼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병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막 1:21~34).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찾아왔기에 잠시도 쉬실틈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지칠 대로 지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피곤하신 예수님이 이른 새벽 한적한 곳에 가서 하나님과 대화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막 1:35). 이것이 예수님의 큐티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나님과 대화하는데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나타나서 “예수님, 빨리 오세요. 온 동네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나는 그 동네에 가지 않겠다. 나는 다른 마을로 가겠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전도하기 위함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인정받는 곳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곳은 이미 나를 인정해 주고 있기에 긴장도 없고 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편한 자리로 돌아가기보다 힘들지만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가기로 하셨습니다.
상황에 반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과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매일 큐티를 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큐티를 하지 않아 말씀에 깨어 있지 않으면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찾아 주는 곳, 자신이 인기 있는 곳에 가기를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큐티를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늘 때어 있고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예수님같이 위대하신 분이 매일 이른 새벽에 하나님과 만나신 것을 보면서 우리도 큐티 시간을 정해 큐티를 해야 하겠다는 도전을 받아야겠습니다. 만일 하루에 30분씩 지속적으로 큐티 한다면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처럼 되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매일 만나는 사람을 닮아 갑니다. 가까이에 있으면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이 없고 받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시대를 바꾼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드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 채워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기적을 일으킬 것입니다. 광야에서도 꽃이 필 것이며 길과 강이 생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