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치하에서 쿠바는 미국 투자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1956년 미상무성은 이렇게 보고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참여는 전화, 전기 분야에서 90%를 넘어섰고 공공 철도사업의 약 50%, 사탕수수 생산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바티스타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카스트로의 1953년 7월 26일 몬카다병영 습격사건을 비롯한 많은 반독재 운동이 전개되었다. 1954년 일반사면으로 풀려난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망명하여 혁명 수행조직으로서 '7월 26일 운동'을 결성하고 게바라 등과 함께 쿠바태생인 알베르토 바요(Arbert Bayo)대령 밑에서 군사훈련에 들어갔다.
1956년 12월 2일 카스트로, 게바라 등 82명은 '글램머'호로 쿠바에 진입했으나 발각되어 많은 대원이 죽고 약 살아남은 30명 중 약 20여명이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중에 들어가 게릴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게릴라운동은 반 기존정당주의, 반지식인주의, 경험적 체험주의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었다. 이러한 운동은 농민, 농업노동자 등의 신뢰와 호응을 받아 급속도록 확산되었다. 이에 바티스타는 1957년 10월 29일에 쿠바헌법의 집행 중지를 선언하고 쿠바 사회는 독재의 마지막 길로 진행되었다. 비록 실패하였지만 도시에서도 반 바티스타 세력이 확산되어 1957년 4월 대규모의 파업이 진행되었고, 혁명군을 진압하려던 정규군도 속속 탈영병이 속출하여 진압에 실패하였다.
1958년 가을에는 시에라 마에스트라 해방구에 대한 토지개혁법이 선언되어 농촌의 개혁이 진행되었고, 11월 카스트로 혁명군은 시에라 마에스트라로부터 나와서 전면적인 공격으로 전환하였다. 결국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는 외국으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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