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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뒤 미국 노동총연맹(AFL) 가입을 추진하던 보스턴 경찰은 시(市) 경찰위원회로부터 노동조합 결성권을 거부당하자 보스턴 경찰의 80% 가량이 파업에 동참하여 1919년 9월 9일 파업에 들어갔다.
경찰이 파업에 들어가자 시 전체는 폭도들의 약탈과 횡포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앤드루 J. 피터스 시장은 보스턴 민병대를 소집해 파업을 진압했다. 당시 주지사로 있던 캘빈 쿨리지는 이 사건을 이용해 지명도를 높이기도 했다. 쿨리지는 처음에는 파업을 막기 위한 조치에 반대했지만 파업이 수습국면에 들어서자 뒤늦게 매사추세츠 주 전역의 민병대를 소집해 파업 진압에 나섰다. 그는 "언제, 어디서, 어느 누구에게도 공공안녕을 저해하는 파업을 할 권리는 없다"고 천명하고 법과 질서의 확고한 지지자로서 국민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때의 활약에 크게 힘입어 1920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부통령후보에 지명되었고, 1923년 워런 G. 하딩 대통령이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