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의학자. 코스섬 출신. 아버지에게서 의학의 실제에 대하여 배웠다. 그 후에 소아시아ㆍ그리스 각지를 편력하여 견문을 넓혔고, 많은 철학자ㆍ의학자와 의견을 교환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환자를 진료하는 한편 책을 써서 발표하였다. 또 제2ㆍ3의 여행을 계획하고 관찰력을 길렀으며, 사고력을 깊게 하였다. 그의 학설을 모은 <히포크라테스 전집>은 히포크라테스의 언설(言說)만을 편집한 것이 아니라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의 소견도 곁들여 있지만, 그 속에서 히포크라테스 자신의 견해를 찾아내기는 비교적 쉽다.
인체의 생리나 병리(病理)에 관한 그의 사고방식은 체액론(體液論)에 근거한 것으로, 인체는 불ㆍ물ㆍ공기ㆍ흙이라는 4원소로 되어 있고, 인간의 생활은 그에 상응하는 혈액ㆍ점액ㆍ황담즙(黃膽汁)ㆍ흑담즙(黑膽汁)의 네 가지 것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이들 네 가지 액(液)의 조화(調和)가 보전되어 있을 때를 그는 '에우크라지에(eukrasie)'라고 불렀고, 반대로 그 조화가 깨졌을 경우를 '디스크라지에(dyskrasie)'라 하여, 이때에 병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는 임상(臨床)에서 관찰을 자세히 하고, 병이 났을 때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 즉 증세, 그중에서도 발열(發熱)을 반응현상(反應現象)이라 생각하여 그것은 병이 치유로 향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았다. 병적 상태에서 회복해가는 것을 '피지스(physis)'라고 불렀고,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라고 하는 설을 세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 피지스를 돕거나 또는 적어도 이것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치료의 원칙이라고 하였다.
증후학(症候學)ㆍ예후학(豫後學)에 대한 연구도 깊었던 그가 특히 빈사환자(瀕死患者)의 얼굴표정에 대하여 한 말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의사의 윤리에 대하여도 중요한 설을 말하였고, '의사의 아버지'로서 오늘날에도 존경을 받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전통적으로 의학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히포크라테스의 생애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는 빈약하다. 당시에 그보다 젊었던 플라톤은 2번 언급했는데,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에서는 히포크라테스를 수업료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코스의 아스클레피아드'라고 칭했고 폴리클리투스와 피디아스가 조각으로 유명한 만큼 히포크라테스도 의사로서 유명하다고 함축해서 말했다. 아스클레피아드가 수도사나 의사조합의 성원이 아니라 수세대에 걸쳐 유명한 의사들을 양성한 가문이라는 것이 이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플라톤이 2번째로 언급한 것은 <파이드로스(Phaedros)>에서이다. 그는 히포크라테스를 의학을 철학적으로 접근한 유명한 아스클레피아드라고 언급했다. 나아가 히포크라테스는 인체를 전체, 즉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했다. 그의 의술은 인체의 부분들을 포괄적인 개념 속에서 이해하여 분할된 각 부분들이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파악되어야 함을 보여준 연구들의 결과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생이었던 메노는 의학사에서 히포크라테스가 병의 원인을 보는 관점은 부적당한 식사로 인해 소화되지 않은 잔류물이 생기고, 이 잔류물에서 생긴 증기가 몸 속으로 들어가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Politics)>에서 히포크라테스를 키는 작지만 '위대한 의사'라고 언급했다. 이것이 그 당시나 비슷한 시기에 히포크라테스에 대해 언급한 것 중 남아 있는 것의 전부이다. 5세기 후 그리스의 의사 소라누스가 히포크라테스의 생애에 대해 썼지만, 내용이나 말년의 생애는 대체로 전설적인 이야기이거나 상상에 의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일생동안 그리스와 소아시아를 여행하며 의술을 행했고 코스 의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출생과 사망 일자는 대체로 정확한 것으로 생각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의학의 발달과, 의사의 이상·윤리에 불변의 영향을 미친 위대한 의사였다.
【히포크라테스 전집】
히포크라테스 시대를 지나면서부터는 관련서적에 '히포크라테스'의 저작들이 전거로 인용되었고 이 전통은 계속되었다. 고대에 히포크라테스가 쓴 것으로 알려진 저서의 수는 약 70권이지만 남아 있는 것은 60권 정도이다.
<히포크라테스 전집(Corpus Hippocraticum)>이라고 알려진 이 저서들 중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10세기경에 씌어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저서라고 추정되는 것이 모두 실제로 그의 저서가 아니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따라서 '진서'(眞書)를 가려내려는 시도가 이후에 진행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늦어도 2세기경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어왔다. 그의 저서들은 길이ㆍ문체ㆍ의견, 대상에 있어서 크게 다르다. 일부는 전문적인 의사용으로, 일부는 조수나 학생용으로, 일부는 일반 독자용으로 썼으며, 철학적인 저서도 있다. 책 내용과 그 밖의 증거를 통해 일부 논문은 출간일을 대강 짐작할 수 있는데, 가장 초기와 가장 후기의 작품 사이에 적어도 1세기(더 길 수도 있음)의 기간이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한 것 같다.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은 모든 작품이 그리스의 학문 언어인 이오니아어로 씌어졌다는 것이다.
이 전집은 의학교의 도서관(코스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에 소장되어 있다가 BC 3세기나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대도서관으로 이전되어 편집 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이 전집이 다루는 주제는 해부학, 임상, 부인과 소아의 질병, 질병의 예후, 식이요법과 약물요법, 수술, 의학윤리 등이다. 히포크라테스 전집 중에 유명한 것은 <유행병>으로 7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데 적어도 2명이 쓴 것이다. 간질에 관한 논문인 <신성한 질병에 관한 연구>, 진단ㆍ예후ㆍ치료에 관한 412개의 짧은 충고를 모은 <아포리즘(Aphorisms)>과 <물과 공기, 장소>, <예후> 등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