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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아더 G. 웰번(Welbon, Arthur Garner, 한국명: 吳越番, 1866-1928)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아더 G. 웰번(Welbon, Arthur Garner, 한국명: 吳越番)은 1866년 8월 4일 미국 미시간(Eastmanville)에서 출생하여 1897년 마가레타(Macalester)대학을 졸업했다. 1900년 샌 안젤모(San Anselmo)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임명되어 1900년 10월 17일 내한했다. 1901년 9월 24일 대구선교사 새디(Sarah Harvey)와 서울에서 결혼하였으며 1909년까지 서울선교부 소속으로 활동했다. 그는 제1회 독노회(1907. 9. 17)때에 전도위원으로 참여하고 제3회 독노회(1909.9.3)에는 경기노회 총대로 참가했다.

선교구역의 분활로 원주가 감리교 구역으로 편입되고 안동에 새로운 선교부가 개설되어 1909년 2월 플래처(Fletcher, 한국명: 鷲義湫, 성소병원 설립자)와 안동선교부로 전임 되면서 선임선교사(Senior missionary)로 안동의 선교 기지(基地)와 가옥을 매입했다. 1909년 8월 안동교회 창립예배를 드리고, 10월 소오텔(Sawtell, 한국명: 史佑大)선교사와 안동 주변지역 전도여행을 계속했다. 이때 그는 안동의 서쪽을 담당하여 순회했다.

안동선교부 주석(主席)으로 안동군 부내면 옥리동(府內面 玉里洞)에 거주하며 안동 지역 교회의 공동관리, 한국어연구 감독, 보조교역자(助師)와 성서판매원 감독 업무 등을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과묵한 성격에 안면이 검은 수염으로 뒤 덥혀 야성적인 인상을 주었고, 교인들과 인간적인 접촉은 별로 없었으나 금곡동에 우물을 파주어 주민들의 식수(食水) 해결을 해 주었다. 안동교회 동사목사(同使牧師)로서 초대 당회장을 역임하였고 지곡, 내매교회에도 사역했으며, 1921년에는 안동지역이 7천여명 교인으로 늘어나 130여 교회로 확장되어 경안노회가 분립되었을 때 임원으로 참여하여 노회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 1909년 안동 장사리(長沙里)교회가 흥왕(興旺)하여 소호리(蘇湖里) 교회가 분립 될 때 동사목사와, 1910년 설립된 영주 풍기(豊基)교회에서도 시무한바 있다. 1917년 평양으로 전임되어 1919까지 순회전도와 계몽 교육에 힘쓰다가 부인의 건강 악화로 가족들과 미국에 일시 귀국했으며, 그 자신은 1922년 다시 돌아와 안동지역 선교사업을 계속하다가 1928년 4월 6일 61세로 별세하여 양화진 제1묘역(바-15)에 안장되었다.



◇ 대구 최초의 간호 선교사 새디 웰번( -1925)


새디 웰번(Mrs. Welbon, Sadie 일명: Sarah)은 미국 북장로회 간호선교사로 1899년 9월 29일 내한하였다. 대구에서 최초 독신 간호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1901년 9월 웰번 목사와 결혼했다. 그 후 서울로 전임되어 여성 성경반을 지도하며 순회 선교를 했다. 남편 웰번이 안동에 부임 한 뒤에는 1910년 6월 합류하여, 젊은 여성층과 노년층으로 2개의 성경반을 조직 운영하고 많은 새 신자들이 성경반을 통하여 교회에 나오도록 했다. 1914년 5월에는 안동지역을 15일간 6백여리(150마일)를 걸어서 전도하며 12개 교회를 순방하고, 400여명을 전도한 기록이 있다. 건강이 악화되어 1919년 미국으로 돌아가 1925년 7월 20일 테네시(Maryville)에서 53세로 별세하였지만 양화진에 묻히지는 못했다.

◇ 양화진에 묻힌 웰번의 두 자녀(Thomas, Alice)

웰번(Welbon, A. G.) 부부에게는 6남매의 자녀가 있었다. 장남 토마스(Thomas Harvey)는 1903년 5월 17일 출생하여 같은 달 27일 서울에서 열흘 만에 사망하였으며, 딸 앨리스(Alice)는 1912년 5월 30일 출생하여 1914년 2월 9일 디프테리아(Diphtheria)로 2살의 나이에 서울에서 사망했다. 이들은 양화진 제1묘역(바-14, 16)에 아버지와 함께 묻혀있다. 한편 차남 헨리(Henry G.)는 1904년 출생하여 1919년까지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뒤 목사가 되었다. 1932년 결혼(Dorothy Klein)하였으며, 한국에서 미 군정청 통역관으로 봉직(1946-1947)하였다. 바바라(Barbara B.)는 1962년 한국에 돌아와 영어교사로 봉직하고, 매리(Mary F.)는 미국 아이오와(Davenport)에서 여배우로 활동했다. 찰스(Charles P.)는 L.A.에서 미국 우편사업에 종사했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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