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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토프트는 1865년 7월 4일 영국 웰링톤에서 출생하였다.
1884년 구세군 사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890년 스웨덴 출신 힐다랄손(Hildaralson) 사관(정위)과 결혼하였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등 북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및 인도 북부지방 사령관 등으로 40년간 봉직하다가 한국 구세군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한국에서 그의 일생을 마쳤다. 부인 힐다랄손은 농아(聾啞)사업의 공로로 창립자 훈장을 받았다.
제임스 토프트(Toft, James 한국명: 杜永瑞)는 한국 구세군 제5대 사령관(參將)으로 1926년 8월 16일 내한하였다. 이들 부부는 서울 역에 도착하여 육아원 음악대와 많은 인사들로부터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곧바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사관회의를 주재하는 등 활발하고 바쁜 일정을 시작했다.
“한국구세군사(장형일)”에 따르면 지방 순회 첫 일정은 1926년 9월 4일, 고산지방을 시작으로 10일에는 충북 영동의 심천 주곡과, 11일부터 대구, 영덕, 13일에 의성, 26일에 충남 홍성, 29일에 개성을 순회하였다. 그리고 10월 7일 전주, 14일 해주 등지를 두루 순회하면서 사관회의를 주재하였다.
1926년 11월 4일에는 세계 구세군을 통괄하는 브람웰 부우드(Bramwell Booth) 대장 일행이 방한하였다. 그는 초대 대장의 아들로 돈독한 신앙과 실천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온 능력의 소유자였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아 그의 한국 방문은 큰 행사 중의 하나였다.
부우드는 서울에 도착하여 자동차 위에서 “구세군은 인종, 계급 상하를 불구하고 흑암 중의 죄인을 구원하고, 죄, 욕심, 술, 도박보다 큰 힘을 준다.”고 연설했다.
그런데 부우드 대장의 한국 방문기간 중 ‘구세군 분규사건’이 발생하였다. 한국 사관 대우에 대한 불만으로 허곤 윤수만 등이 20개 항목으로 된 진정서를 낸 사건이었다.
진정 내용에는 한국인 사관의 참모권 부여, 차별 대우의 개선, 만행(蠻行) 사관의 축출과 선행(善行) 사관의 승진, 생활비 인상 요청 등이었다. 부우드는 이 사건에 대하여 유감을 표시하고 분규행동은 비 복음적, 비 구세군적이라 지적하고 이 사건으로 배운바가 많아 1927년은 “전능의 해”로 삼기를 기원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하여 20여명의 사관들이 면직되었으며, 그는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며 구세군의 명예를 손상시킨 충격으로 병을 얻었다.
그가 한국에 부임한지 2개월 반 만에 겪는 엄청난 사건이었으며, 책임이 그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과중한 정신적 부담이었다. 결국 이로 인하여 1928년 5월 25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치료와 간호에 최선을 다하였으나 1928년 6월 15일 새벽 3시 별세하고 말았다.
1928년 7월호 구세신문에는 “구세군 조선사령관 참장 두영서씨 별세”라는 제목으로 차드(Robert Chard, 한국명: 車宇道) 서기 장관은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였다.
“참장께서 조선에서 일하신 것은 참으로 어려운 처지와 형편 아래에서 나아가게 되었는데 조선 임명 첫해에 당하신 그 고난과 낙망은 육체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나, 그것도 불구하고 일을 계속하여 건강이 악화되어 별세 2주일 전에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종말에는 이 세상을 영영 하직하고 영원한 나라로 가서 만왕의 앞에 계시게 되었도다... 참장은 일평생 선한 싸움을 싸우셨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셨고 이 세상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사신이가 되었도다.”
그는 구세군 사령관 재임 기간 중 정동 사관학교, 대구군영, 해주군영의 신축 등 많은 사업을 확장하였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 쿠퍼(Harold Cooper, 한국명: 具佑保) 참모 정위는 “그가 우리 지방(해주)에 여러 영문을 방문하여 주신 것을 심히 기뻐하며 전하신바 복음과, 끼치신바 모범과, 감동과 감화는 우리와 함께 머물러 있을 것이다.
지방 영문을 순회할 때에 태산준령을 넘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피곤한 내색도 보이지 아니하고, 구주를 위하여 기쁨으로 하셨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편벽됨이 없이 곧고 바르게 하셨다.”고 하였다.
장례식은 차드(Robert Chard) 서기장관의 인도로 거행되고 유해는 양화진 제2묘역(나-28)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He is with Christ"라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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