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특징
본 신앙고백서는 개혁주의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칼빈의 신학적 사상을 거의 완전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밀한 칼빈주의적 성격의 신앙고백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개혁주의 교회에서 받아들이는 최후의 신앙고백이라는 것과 그 신학적 입장도 16-17세기를 이어 철저하게 각 교리에 있어서 개혁주의적 독특성을 잘 정리하고 있기에 본 고백서는 개혁주의의 신앙고백서 중에서 가장 대표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228)
이러한 본 신앙고백서에 대한 평가를 오늘날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MC:이후로는 이 약자로 표현)이 스콜라주의적이라고 하면서 왜곡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229) 이러한 평가의 결과로 현대는 신조나 요리문답 방식의 교육 체계를 거의 폐기하는 방향으로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본 신앙고백서의 기본적 사상은 정확한 성경적 입장에 기초하고 있으며 또한 본 신앙고백서들의 각각의 조항들은 단순히 역사적으로 한 시대에 자리잡았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도 여전히 그 성경적 입장이 개혁주의의 독특한 성격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계속적으로 개혁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입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즉 17세기의 역사적인 상황을 갖고 있지만 그 내용 면에 있어서는 가장 철저하게 바른 성경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고백했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산물로서만 취급될 수 없는 것이다. 순순한 성경의 의미는 오늘날도 여전히 성도에게 있어서 바르게 고백되어야 할 신앙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개혁주의의 교회에 도전해 오고 있는 많은 非개혁주의적 교리들과 특히 신비주의와 알미니우스적 사상들을 배격하고 바른 성경적인 개혁주의 신학을 바르게 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저자는 WMC를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문제제기를 제기하고 이것에 대한 바른 연구를 찾아가고자 한다. 첫째는 17세기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본 신앙고백서가 자리하고 있는 역사가 바로 17세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거리 때문에 오늘날 WMC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형태가 너무나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20세기에서 17세기의 WMC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바르고 순수하게 WMC의 정신을 드러내고 바르게 신앙고백을 받는 것인지를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다.230)
두 번째로는 WMC에 대한 정확한 개혁주의적 연구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오늘날 이 연구가 거의 K. Barth의 입장에서 연구 되고 있는 형편이며 또한 복음주의적인 접근으로 성경적인 철저한 의미를 많이 잃어 버리고 퇴색시켰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많은 시간과 작업이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분량상 본 논문에서는 중요한 특징들만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WMC와 대,소요리문답(약자:WM大, WM小)을 전체적으로 비교해서 바른 의미를 찾아가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 엄밀한 개혁주의적 독특성들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20세기 들어와서 미국에서의 WMC에 대한 수용 방식의 특징과 또한 한국에서의 수용 방식의 특징이 어떠한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필요성은 위의 복음주의적 접근 방식 때문에 오늘날 많은 장로 교회에서 본 신앙고백서을 명목상으로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지켜가는 것의 의미를 상실해서 신앙고백의 위치가 거의 없어지고 더 나가서는 적극적으로 거부되고 있기 때문에 이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결국 이런 연구를 통해서 오늘날 장로교회에서 본 신앙고백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켜 가는 것이 역사적 장로교회와 일맥 상통한 입장인지를 밝혀 내며 또한 그럴 때 이 고백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실제적으로 적용될 것인지를 확인해 가야 할 것이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역사
특히 본 신앙고백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입장을 고려해야만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종교적 배경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가교회 내지 민족교회가 형성되었다. 영국은 왕조가 종교의 방향을 좌우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즉 헨리 8세, 에드워드6세, 메리여왕, 엘리자베스1세, 제임스1세, 찰스1세등 왕조의 변화에 따라서 개신교와 카톨릭의 세력이 좌우되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엘리자베스 여왕 때에 대륙에서 돌아온 개혁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청교도(Puritanism)역사를 창출하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퓨리탄은 영국 국교의 카톨릭적 요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교역자의 부도덕과 기성 영국 교회의 도덕적 이완과 잘못된 교리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순수한 개혁교회적 교회 정치와 정.교분리원칙 및 보다 순수한 칼빈 신학을 수립하려고 하였던 것이다.231)
이와 같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본 신앙고백서는 작성되었으며,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그 목적에 있어서 보다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을 형성하려고 신앙고백서 작성이 시도되었던 것이다. 특별히 당대에 주류를 이루고 있던 아르미니우스적 사상을 철저히 배격하고 바른 성경적 입장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232)
WMC는 왕조와 분리된 의회가 1643년 7월 1일부터 1649년 2월 22일까지 신학자 총회를 소집하여 영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의식, 권징, 정치를 할 수 있는 보다 완전한 개혁을 단행하여 가까이 있는 스코틀랜드 교회나 대륙의 개혁 교회와 일치케 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통해서 작성되었다.233) 참석자들은 151명으로 30명의 평신도 사정관234)과 121명의 목사들로 구성되었으며 대부분이 장로교235) 소속을 갖고 있었다. 이 외에 감독교회파236)와 독립교회파237)와 에라스티안파238)등이 있었다.239)
또한 요리문답의 성격도 매우 중요하다. 대요리문답은240) 주로 성인과 목사의 교리교육과 설교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특히 WMC의 각 조항을 더욱 자세하게 주석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그리고 이 대요리문답은 James Ussher의241) 특징을 가장 많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Ussher의 대요리문답을 보게 되면 웨스트민스터의 대요리문답의 가치와 특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율법에 대한 이해, 즉 도덕법으로서의 10계명에대한 특징을 칼빈의 신학적 기초에서 잘 드러내 주고 있다.242) 소요리문답은243) 대요리문답의 주제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아이들의 교육용으로 작성되었다.
이 요리문답들에서는 교회 정치와 권징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요리문답서들은 1647년 가을에 심사와 승인을 받기 위해 의회로 보내졌으며, 에딘버러 총회는 1648년 7월 20일에 대요리문답을, 7월 28일에는 소요리문답을 각각 승인하면서, 이 두 요리문답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며, 공인된 교리, 예배, 권징, 교회 정치에 위배된 것이 전혀 없다"라고 선언했다. 이 결정 사항은 1649년 2월 7일,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비준을 받기도 했다.244) 이와 같이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WMC와 요리문답를 표명하면서 교리로서의 기독교와 생활로서의 기독교 사이에 선택의 자유를 엄히 거절하고 오직 성경의 바른 가르침을 따라 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어지도록 노력했던 것이다.245)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교리적 특징
WMC 구조의 주된 특징은 전체가 하나의 조직신학적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6-17C 동안 많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이 만들어 졌지만 WMC처럼 성경 전체의 주제를 체계화시킨 고백서는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WMC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정리하게 되면 성경 전체를 이해하고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지면상 세부 항목을 전부 다루지는 못하고 개혁주의 역사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개혁주의 교리의 특징들이 어떻게 WMC에 정리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246) 순서는 WMC의 작성 구조에 따라서 정리를 하고자 한다.
① 성경론
a. 개혁파 신학에서 성경론의 위치
WMC에서 성경론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전체의 구조 가운데서도 가장 초두에 위치함으로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당시 청교도들이 전체 개혁주의 교리 체계를 어떤 기초 위에서 시작했었는지를 제시해 주는 중요한 이해이기도 하다. 특히 개혁주의 체계에 있어서 '성경론'은 종교 개혁의 기초를 마련하는 중요한 주춧돌이 되기도 했으며 또한 그 이후 개혁주의를 특징 짓는 중요한 표지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곧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주제로 당시의 모든 종교개혁의 방향을 설정해 주었던 내용이다. 그리고 칼빈을 이어 개혁주의 신자들의 회심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아르미니우스적 회심'과 대조적인 '성경론적 회심'으로 개혁주의 회심의 특징을 제시하기도 했다.247)
여기서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라는 개혁주의적 표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야만 바른 개혁주의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말로만 되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포함된 정확한 의미를 받아들이고 고집할 때만이 "오직 성경"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여기서 칼빈은 성경에 대한 단순한 해석학적 원리로서만 아니라 일찍부터 전기독교교리와 기독교 철학의 정초 및 바른 생활에 관련하여 오직 성경으로부터 생각하고 말하는 원칙으로 제시한 것이 적정과 절도의 규범이다. 우리가 성경을 유일한 경건과 삶의 규범이라 고백하였을 때, 성경이 구원의 방도로서 사용되는 것에 제한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248)으로서 오직 그것에 따라서 생각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따라서 영적인 모든 대적들을 대적하고 이 세상에서 그것에 따라서 살고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249), 또한 이러한 해석학적 규범을 통해서, 칼빈은 이런 확고한 원리에서 출발하여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에 관하여, 혹은 그 성경의 증거들을 넘어선 것에 대해서는 엄밀하고 확실하게 침묵하기를 원했던 것이다.250)251)
이처럼 칼빈의 적정과 절도의 규범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은 "여기에서 모든 종교적인 교리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적정과 절도의 규범을 지켜야 함을 기억하고 있다. 즉 감추어진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말하거나 생각하고 알고자 욕망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표현 속에 잘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252)
물론 여기에서, 다르게 한 번 성경의 감추어진 신비에 대한 경우 규범에 맞게 매우 적합하도록 사색하는 것, 즉 매우 주의 깊게 행하면서, 사고나 말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의 한계를 벗어나서 더 멀리 나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적정의 이러한 최선의 한계는, 우리가 배움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을 때, 스스로 교리의 결말을 지어야 함에 있어서 조차도, 생각하고자 원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그의 말씀밖에 어떤 다른 곳에서 찾지 않고 그의 말씀을 가지지 않고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을 때, 우리는 만족스럽고 긍휼로 주워진 피조물들 가운데 그 모든 재화들로부터 저를 확신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253) 이와 같은 적정과 경외의 근본적인 엄밀한 규범을 칼빈은 해석학적 근거의 구체적인 표현254)255)으로 제시했던 것이며, 이러한 의미가 바로 "오직 성경"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이처럼 개혁주의자들은 '성경론'을 전체 교리의 체계로 제시하면서 당시 17C의 非성경론적인 정신들을 철저히 배격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에 가장 크게 非성경적인 정신으로 기독교를 도전했던 것은 로마 카톨릭 성경관이었다. 이들은 성경의 '명백성'을 부정하고 오직 교회의 해석을 통해서만 성경이 이해되고 또한 그 권위를 소유할 수 있다고 하여 성경보다 교회의 권위를 더욱 높이 제시하였다.
다음으로는 재세례파의 성경관으로서 이들은 성경 자체를 종이 문자로 인식하고 오직 성령의 직접적인 가르침과 교통을 성경보다 더욱 높이 세웠다. 다음으로는 아르미니우스적 성경관의 도전이 있었다. 이들은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서 성경의 실제적인 위치와 권위를 제시했다. 그럼으로 많은 성경의 내용들이 변질되거나 아니면 삭제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경향 속에서 개혁주의자들은 위의 세 입장 모두를 배격하면서 가장 바른 성경적인 성경관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런 취지를 이해하게 될 때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성경으로'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그 내용은 WMC의 '성경론' 정신과 판이하게 다른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우리는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성경관에 대한 인식이 위의 세가지로 대표되어(근대에는 자유주의를 통한 성경비평학도 등장) 동일하게 도전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256) 이런 경향을 보아서도 WMC의 성경관은 17C 당시의 것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지켜져야 할 중요한 성경관임을 알 수 있다.
b.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성경론 이해
이제 1장의 중요 사항들을 개혁신앙의 관점에 살펴보고자 한다.
①항: 여기에서는 일반계시의 충분성과 특별계시의 필요성이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분리되거나 혼합될 수 없는 것이며 모두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방편임을 지적하고 있다.257) 특히 둘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특별계시를 통하여 일반계시의 자리를 회복하는 연결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최고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간다고 제시되고 있다.258) 두 번째는 왜 하나님께서 계시를 기록으로 전달해 주셨는지를 제시하는데 그 원인을 3가지로 제시하고 있다.259)
마지막으로는 이전의 계시 전달 방법이 중단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것은 성경 계시의 종결을 의미하는 중요한 개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 어떤 추가나 삭제가 제시될 수 없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 이유가 매우 합당치 않음을 제시하고 있는데 WMC에서는 그 이유를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선하신 뜻에 의지하고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런 정신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더 이상 성경 계시를 넘어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하는 것을 하나님께 향한 가장 큰 모독과 도전의 행위로 인식하며 하나님의 뜻의 결정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②항: 이 부분의 가장 주된 특징은 두 가지로 제시되고 있는데 첫 번째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란 부분이다. 이것은 1항의 연속적인 설명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직접적인 계시를 성경으로 제시하셨기에 '기록된 성경'도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권위를 갖음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많은 非성경론자들이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해 왔으며 그럴 때마다 개혁주의자들은 기록된 성경이 곧 하나님 자신의 말씀임을 지켜왔다.
非성경론자들은 때로는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분적으로 '포함'260)되었다는 방식 등 다양하게 '동일'의 개념을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기초해서 기록된 성경이 곧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라는 정신에 의해서 개혁주의자들은 "성경 안에서 성경으로 말미암아 성경으로 더불어 신자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261)라는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정경으로 인정하게 되는 중요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감동"262)과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란 표현을 읽게 된다. 특히 후자의 고백은 율법의 제 3사용에 대한 개혁주의의 독특한 고백이다. 즉 이것은 1항과 2항의 연결 속에서 개혁주의자들의 삶의 방식을 제시해 주는 내용인 것이다. 즉 스스로 삶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시하는 뜻에 철저히 '순종'하는 방식으로서의 삶을 언급하는 것이다.263)
④-⑤항: 성경의 권위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자체가신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만큼 오늘날 수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내용도 드물다. 그 이유는 바른 개혁주의적 성경관이 가르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만큼 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 발생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은 더 이상 성경 말씀의 권위를 느끼지 못한다. 설교시에도 단순한 이야기나 담화 정도로만 인식하지 그 말씀 자체에 생명을 두지는 않는다.
또한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성경의 특징은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기독교에 접근하려는 큰 도전이 있다. 이것을 WMC는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하나님 중심의 사고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전체의 목적"이란 표현은 이 정신을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성경의 내용이 비록 인간의 삶과 업적과 또는 그 과정을 다루고 있을 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제시하려고 하는 최종 목적은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로 되돌아 가야 하는 것이다.264)
⑥항: 성경의 명료성과 충분성에 관한 것으로서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명백히 제시되는 방식이다. 여기서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을 인간 생활의 필요한 모든 것을 제시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이상의 것을 원하지 않는 정신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건전하고 필연적인 귀결로서의 성경 추론을 제시한다.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단순히 성경의 말씀을 되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끊임없이 성경 전체에서 흐르고 있는 의미들을 찾아내도록 성경을 주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예배와 정치에 관련된 부분으로서 뒤에서도 다시 언급되겠지만 여기서는 그 원리만을 언급하겠다. 성경 안에는 모든 세세한 부분을 다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선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충분함을 지적하시고 인간 생활의 세부적인 사항들은 성경의 전체 정신과 흐름에 따라서 그 시대마다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두셨다. 이처럼 여기서 제시하는 3가지는 개혁주의의 성경관인 오직 적정과 절도의 원리로서 성경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다.265)
⑧항: 성경 사본에 관한 문제를 언급한다. WMC는 원본은 상실되었지만 사본들이 섭리에 의해 완전하게 보존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많은 정경 비평 연구가 시도되면서 성경의 정경성과 권위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특히 칼빈의 주석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는 사본 비평을 오늘날 칼빈 연구자들은 정경 비평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칼빈의 의도는 사본상의 차이를 지적하고 또한 신약의 구약 이용에 있어서의 특징이 문자 그대로의 인용이 아니라 그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 기준에서 자유롭게 인용한 형태를 지적하고 있는 것뿐이다.
⑨항: 성경 해석에 관한 사항이다. WMC에서 취하고 있는 가장 큰 성경 해석 원칙은 "성경은 성경 그 자체로서 해석한다"는 원리를 갖고 있다. 이 원칙은 17세기 당시 중요한 논쟁 주제였음을 알 수 있다. 김영규 교수는 이 방식은 위클리프나 루터, 부처, 불링거등이 제시했으나 이것은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적 방식에 머무르는 방식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원전으로 혹은 원전 자체로부터 연구하는 인문주의적 방식이었던 것이다.266) 그러나 WMC에서 "성경은 그 자체로 해석한다"라고 했을 때 이 표현은 앞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칼빈이 제시하였던 적정과 절도의 원리에 입각한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1장 전체에 흐르고 있는 성경관이기도 한 것이다.
WMC에서는 1장에서 뿐만 아니라 대,소요리문답의 성례 부분인 말씀에서도 이것을 명확히 언급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외적인 방편을 통하여 자신의 은혜를 전달해 주시는데 그 중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말씀인 것이다.267) 특히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읽고 듣게 함으로써 계몽시키고, 확신시키고, 겸손하게 하며, 그들을 자기 자신들로부터 몰아내어268)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이끄신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형상을 본받게, 뜻에 복종, 강건케, 시험과 부패에 저항할 수 있도록, 은혜로 양육, 마음을 거룩케, 위로로 굳게한다고 이어 고백하고 있다.269) 이런 표현은 성경이 단순히 원전으로서의 가치만이 아니라 전 삶에서 주의깊고 절제 있게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으로서의 해석과 적용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정신은 개혁주의의 전체 성경관에 대한 가장 큰 독특성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⑩항: 이 표현은 기독교에 있어서 성경의 자리를 제시하고 있는 의미이다. 4항의 성경의 권위와 연결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결국 이것은 1장 전체를 정리하는 핵심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첫째되는 의미는 온 우주의 역사의 최종 주권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명백히 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WMC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표현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 하나님께서 성경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셨음을 하나님 스스로 확증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성경으로 하여금 나의 순수한 즐거움이 되게 하소서(Sint castae deliciae meae Scripturae)"라고 이 정신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또한 전체 개혁주의의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오직 성경(Coram Deo, Sola Scriptura)"으로만 살려는 표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기도 하며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8:20)"의 말씀의 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② 신론의 특징
이제 WMC 본 조항으로 들어가게 되면 신론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나타난다. 본 논문에서는 2가지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즉 "삼위일체론적인 이해의 개념"과 신론 중심적인 사고로서 "하나님께 영광"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외에 예정론과 선택, 섭리는 Dort신조를 통해서 참고하도록 하겠다.
a. 개혁신학에 있어서 삼위일체 이해
WMC의 본 조항 33개의 주제 모두가 어느 한 위에 편중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삼위일체적인 균형을 가지고 전체에 골고루 표현되어 있는 것은 매우 놀라운 특징이다. 특히 각 조항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어거스틴과 칼빈의 전통을 따라서 통일적 경륜의 형태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의 모든 외적 사역들이 위격들에 따라 나누어 질 수 없다는 말이다.270)
어거스틴에 따르면 "세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든 여호와 하나님이든, 하나님은 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곧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말할 때도 유일한 한 분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말하는 것이다."271)
이런 이유 때문에 각 위격을 말할 때도 "같은 삼위일체 안에서 고유한 개체에 대해서 하는 말은 그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혹은 피조물과의 관계에 관한 말로서 드러난다. 즉 실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삼위일체가 하나요 위대하시고 선하시고 영원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272)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제시될 수 있다.273)
첫째: 성부, 성자, 성령은 분리할 수 없이 존재하신 대로 그렇게 분리할 수 없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삼위일체는 분리할 수 없이 역사한다.
둘째: 그 실체 혹은 본질에 관계해서 하나님은 유일하시다, 선하시다, 영원하시다, 지혜로우시다, 전능하시다는 말이지 각 위격에 관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이 동시에 함께 실체인 것처럼, 동시에 함께 위대하시고 동시에 함께 선하시며 동시에 함께 거룩하시고 자체에 따른 다른 것이 무엇이든지 동시에 함께 그러하다.
셋째: 위격들 상호간에 발생과 발출과 관련해서, 나시고 나오시는 주체의 수동성과 능동성이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넷째: 이렇게 위격들 상호간에 뿐만 아니라 피조물과 관계해서도 하나요 동일한 실체의 성부, 성자, 성령이시오 창조주 하나님과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적으로 같지 않고 특별히 물질적인 피조물 형태로 말미암아 분리되어 계시될 수 밖에 없다.274)
b.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신론적 특징
위의 통일적 경륜 형태의 삼위일체 구조가 WMC에는 잘 표현되고 있다. 먼저 2장 자체에서 1-2항이 통일적 속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살아 계신 참되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 지극히 순수한 영이시며', '그는 홀로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셔서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아 그에게로 돌아간다' 여기서 각각의 표현도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적 삼위일체로 이해한다.
다음으로 3항에서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나 삼위로 계신다. 본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