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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소피아 프릭(Frick, Jenny Sofia, 1886-1912)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구세군 스웨덴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구세군 독신 여 선교사

 

소피아 프릭(Frick, Jenny Sofia)은 1886년 8월 16일 스웨덴 텔례북에서 출생하였다. 스톡홀름 구세군 성경대학교에 입학하여 1911년 11월 20일 참위 직분을 받았으며, 곧바로 한국 구세군 선교사로 선임되어 1911년 12월 24일 내한하였다. *1)

스웨덴의 연대장 뷔버는 프릭을 한국에 파송하면서, 프릭이 한국으로 갈 수 있음이 무한히 기쁘다고 말했다. 그 사유는 “본래 프릭은 성령이 충만한 젊은 여성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어디를 가든지 주님을 위하여 좋은 사업을 크게 이룩할 수 있는 선교사로 여기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프릭은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으로 한국에 도착하였다. 서울 평동에 머물면서 한국말을 익혀 빠른 기간에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함께 내한한 구세군 선교사들에게 “자기는 도저히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갖지 아니하며, 오직 한국에서 살다가 한국인을 위하여 죽을 줄로 믿는다.”고 했다. *3)

그는 쪽 복음과 '구세신문'을 나누어주며 문서전도와 노방전도에 힘썼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기도와 성경 공부를 한 뒤, 7시에는 뒷산에 올라가 한국인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 때마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한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4) 그는 선교사로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한국과 한국인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러던 프릭이 1912년 4월 18일 급성 뇌염으로 앓아눕게 되었다. 의사의 극진한 진료와 호가드 사령관 부인 등 여러 사관들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았으나 1912년 4월 29일 오전 4시 45분 순직하였다. 그와 함께 생활하던 본영 총무서기관 크리스핀(Crispin, Jhon, 한국명 : 길수빈)은 프릭 선교사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는 프릭 사관과 한 대문 안에서 살았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를 살펴 볼 수 있었다. 그는 항상 오전 일곱 시쯤이면 성경을 들고 집 뜰 주변을 거닐었다. 궁금하여 그에게 하루의 생활을 물었더니 그는 매일 6시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기도와 성경공부를 하기로 결심하였으므로 이를 실천한다고 했다. 또한 이른 아침에 자주 높은 산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한국을 위하여 기도한다고도 했다. 한국인을 구원하여 주님의 빛을 발하도록 하려는 생각만 간절하다고 했다. 한국말은 잘 하지 못하지만, 구세 신문과 마가복음을 자기 돈으로 사서 여러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므로 칭송이 그치지 아니한다.”고 했다.

크리스핀은 “프릭 사관은 비록 별세하였으나 그가 한국에서 활동하며 모든 선교사들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그의 아름다운 삶과 열성은 본보기가 퓸杵峠玖? 우리는 주님의 사업을 잘 행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장례식은 구세군 본영에서 호가드(R. Hoggard, 許嘉斗) 사령관에 의하여 집례되었고 유해는 양화진에 운구되어 호가드 부부와 여러 조문객들이 모여 5월 2일 양화진 제1묘역 (나-11)에 안장되었다.*5)

이때 사관학생 김병도는 추도사를 통하여 “그는 4만리 먼 곳에서 한국인이 죄악 가운데 빠져있음을 전해 듣고 성신의 인도하심으로 대장의 명을 받아 일가친척과 고국을 이별하고 바다를 배편으로 건너고 육지를 기차로 횡단하면서 여러 나라를 지나 언어와 풍속이 다른 한국 땅에 왔다. 그는 육신을 한국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한국어와 성경을 열심히 익히면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의 죽음을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통곡할 일이나 영혼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찬송할 것이다.”라고 했다.

프릭 선교사는 한국 체류 활동 기간이 4개월에 불과하지만 참으로 훌륭한 삶을 살다가 간 선교사였다. 그의 장례식 때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은 진심으로 슬퍼하였으며 생전의 업적을 추모하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최초로 순직한 구세군 선교사였다.
묘비에는 “1886년 8월 10일 출생하여 1912년 4월 29일 승천”이라 기록되었다.

 

스웨덴에서 한국에 파송된 최초의 구세군 선교사 제1진은 프릭(Frick, Sofia), 코흘러(Kohler, Magda), 우을선(Olsson, Verna) 등 3인으로 1911년 12월 24일 내한하였다. 이 중 프릭 사관은 한국에 파송된 구세군 선교사 중 최초(1912)로 양화진에 묻혔으며 코흘러는 다음해(1913) 안장된 독신 여성 선교사이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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