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관리자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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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
매일선교소식 |
작성일 |
2012-05-16 |
| 제목 |
버마민주화와 소수종교(3) |
| 주제어키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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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미얀마 |
| 자료출처 |
푸른섬선교정보 / 매일선교소식 2634호-2012.4.16(수) |
성경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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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9070 |
추천수 |
7 |
카렌족 난민촌 내에서 침례교회를 이끌고 있는 폴라 윈(59)는 “최근 새 정부가 무슨 개혁조치를 취했다는 말이 들려오는데 우리는 그 내용을 BBC버마어 방송을 통해서야 접하고 있으나 실제로 삶에서 체감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촌에서 대나무와 마른 잎 등으로 얼기설기 지어진 임시 가옥에서 살고 있다. 집 앞에는 살웬강이 흐르고 강에서는 카렌족 아이들이 놀고 있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매우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는 “만일 나나 내 가족들이 원래 살던 마을로 돌아가려 한다면 바로 총에 맞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윈과 가족들은 1985년 마을에서 탈출했다. 정부군이 카렌족을 향한 대공세를 전개할 당시였다. 이후 무려 18년 동안이나 지뢰밭을 헤메며 이리 저리 떠돌다가 현재의 난민촌에 정착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지뢰는 정부군만 매설한 것은 아니다. 반군도 적지 않은 지뢰를 매설했다. 난민촌에 살고 있는 난민들의 지난 이야기는 윈과 대개 비슷하다. 지난 1월, 정부와 KNU간에 잠정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위험도가 다소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카렌여성기구(KWO)의 한 관계자도 과거보다는 정부군 검문소의 검문이 부드러워졌고 양측 간의 군사적 충돌도 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월에는 태국에 있는 7곳의 난민촌으로 1,100명의 난민들이 새로 들어왔다. 이들 가운데 450명은 기독교인들이다. 이는 1월의 잠정휴전협정 이후에도 양측간의 군사적 충돌이 줄기는 했을 지언정 멈추지는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태국쪽 지역과 버마쪽 지역 합쳐서 국제기구 등에 의해 관리되는 등록된 난민의 수는 7만 4천 명, 비등록 난민의 수도 5만 3천 명에 이른다. 정부와 군사적 갈등을 빚는 소수종족은 카렌족 만이 아니다. 카레니, 카친, 친, 몬, 샨 족 등이 정부군으로부터 심각한 박해를 받고 규모가 크건 작건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버마족과 이들 소수종족 간의 비극은 1948년까지 이 지역을 통치한 영국 식민정부의 책임도 크다. 식민정부는 소수종족 지역을 Frontier Area라고 불렀고, 버마족 거주지역을 Burma Proper라고 부르며 각기 다른 방식의 통치를 구사하며 양측간의 대립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위한 단결을 막았다.
독립 후 양측은 평화적인 단결을 통해 새로운 통일버마 건설을 위한 협력을 하기로 합의했으나 식민통치 시대에 쌓인 감정의 골은 대표간의 협상만으로 타결되기에는 깊었다. 결국 독립 직후부터 양측은 지금까지 내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민선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으로 당선된 셰인 대통령은 소수종족 정책에 있어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를 떠받치고 있는 군부도 소수종족 문제에 관한 온건파와 강경파가 존재한다. 강경파는 대통령에게 과도하고 무모한 변화를 추구하지 말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버마의 현행 헌법상 대통령이 군부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헌법은 국회 의석의 1/4을 군부가 지명하는 군장교에게 배정하는 등 군부의 정치개입을 명문화, 제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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