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관리자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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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
매일선교소식 |
작성일 |
2012-05-10 |
| 제목 |
버마민주화와 소수종교(2) |
| 주제어키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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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미얀마 |
| 자료출처 |
푸른섬선교정보 / 매일선교소식 2631호-2012.5.10(목) |
성경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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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
8922 |
추천수 |
6 |
카렌족여성기구의 지도부의 나우 크냐우 파우는 최근 몇몇 카렌족 마을을 돌아본 후 많은 기독교인들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집에 불상을 들여다 놓거나 벽에 불화 등을 걸어 놓아 자신이 불교 신자인양 위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카렌민족연합 1여단이 점령하고 있는 한 마을의 경우 기독교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최근 불교마을로 변모했다. 교회가 불교 사원으로 바뀌기도 했다. 물론 이는 기독교인임을 숨기기 위한 위장이다. 이렇게 하니 정부군도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부군이 완전히 장악한 지역을 백색지대, 부분장악하고 있는 지역을 갈색지대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지역은 카렌족 거주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문서나 행정언어는 버마어만 통용된다. 학교에서는 카렌족의 역사를 배우지 못하게 하고, 정부는 버마족의 문화로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투쟁을 멈추면 결국 우리는 카렌족의 정체성을 잃고 버마인에 동화될 수 밖에 없다.”고 그녀는 우려를 표시했다. 그녀는 또 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특별하다고 말했다. 정부군이 카렌족 주민들을 짐의 운반 등 강제 노동에 동원하는데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적지 않은 여성들이 성적인 폭행에 시달린다.
물론 카렌족 반군이 저지른 만행 사건도 몇 건 있다. 그러나 카렌족 주민들은 이러한 사건은 극히 일부라고 믿는다. 그들은 카렌족 반군 지도부가 휘하 병사들에게 비도덕적인 일은 절대 금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카렌족과 정부군 사이의 장기간의 내전은 카렌족과 버마족의 종족 분쟁이기도 하지만, 종교분쟁의 성격도 다분하다. 1948년 성탄 전야에 버마군은 박격포와 총 등을 동원하여 타나세림지역 남부의 메르구이의 한 교회를 공격했다. “버마의 종족정치; 분쟁의 국가”의 저자인 애쉴리 사우스는 당시 사건에서 80명의 카렌족 기독교인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며칠 후인 1949년 1월 버마군이 카렌주에 진주했고, 이에 대항하여 카렌민족해방전선이 발족했고, 이는 지금의 카렌민족연합으로 발전했다.
1961년, 당시 총리인 우 누 가 이끄는 정부는 국가종교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으로 인해 불교는 버마의 국가종교로 인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카렌족 등 소수종족들은 정부가 소수종족에 대한 버마족화와 소수종족 지역의 점령을 추진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를 계기로 대부분이 기독교인인 카친족은 카친독립기구(KIO)와 군사조직인 카친독립군(KIA)을 결성하게 되었다. 오랜 내전 끝에 정부와 카친족 사이에는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지난 2011년 6월 정부는 돌연 휴전협정을 깨고 카친족에 대한 공세를 개시했다. 이로 인해 75만 명의 카친족이 집과 마을을 잃고 난민으로 전락했다고 카친족 측은 주장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 4월 26일에는 양측 간의 새로운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마군이 파모 지역과 라이자 시의 중간 지역을 대상으로 박격포 등을 동원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공격을 받은 콘라우지역의 어린이 두 명이 사망하고 성인 남성 두 명이 부상을 당했다. 같은 날, KIO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라이자시 북부 번화가도 공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정부군 3천 명 가량이 라이자 인근에 주둔하기 시작했고, KIO는 자칫 큰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커 지고 있다.
그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라이자의 KIA의 본부 지역이다. 많은 병력과 함께 다량의 포도 배치해 놓고 공격을 감행하기 직전이다. 다만 아직 공격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일각에서는 정부와 카친족 사이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인민연대의 고위 당직자인 은요 온 민트는 정부와 소수종족 사이의 평화정착을 위해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인데, 그는 양측 간에 오래 쌓인 불신이 있기 때문에 평화로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쌓인 불신의 골이 워낙 깊기 때문에 평화정착과 신뢰 구축 역시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자신은 2020년까지의 장기과제로 이 문제를 풀어가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소수종족과 정부군 사이의 문제에 대한 보도는 매체가 어느 쪽에 우호적이냐에 따라 내용이 크게 다르다. 최근 Compass Direct News의 관계자는 카렌족 반군 지도자와 난민들을 인터뷰했다. 그가 인터뷰한 곳은 사방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언덕 위에 있는 카렌족 군사기지 내였다. 바로 인근에는 약 3천 명 규모의 난민들이 거주하는 난민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버마 당국은 이 지역을 반군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흑색지대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정부군이 주둔하고 있어, 정부군은 카렌족 반군은 물론 주민들을 상대로 조준사격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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